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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못됐지만…"Keep going" 첨부파일 -

정치 인생 연 1969년 졸업연설 `정치인 힐러리` 48년 요약하면 미국 사회에 대한 도전 그 자체
올해 웰즐리대 졸업연설서도 자서전 끝맺는 마지막 문장도 "우리가 온 길을 계속 가야한다"

 

 

◆ 세계지식포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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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2017년 힐러리 vs 1969년 힐러리
힐러리 클린턴이 정치 인생을 시작하는 계기가 된 1969년 웰즐리대 졸업연설 당시 사진(오른쪽). 힐러리는 여성·흑인 인권 문제 등에 대해 진보적 입장을 피력하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됐다. 48년이 지난 2017년 힐러리는 모교인 웰즐리대에서 다시 졸업연설을 했다. 힐러리는 이날 '세상에서 가장 두꺼운 유리천장을 깨려다 실패한 여자'로 소개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온 길을 그대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냐고? 답은 하나다. 우리가 온 길을 계속 가야 한다(Keep going)." 600쪽짜리 자서전 '무슨 일이 일어났나'는 이렇게 끝난다. 대선 패배 후 대외 활동을 자제하던 힐러리 클린턴은 지난 5월 본인의 모교인 웰즐리대학의 졸업식 축사 요청을 받는다. 비가 오던 졸업식 날 그는 좌석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정치인 힐러리의 인생은 1969년 그가 맡았던 웰즐리대의 졸업연설에서 시작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졸업자가 연설을 맡은 것도 처음이었던 데다 힐러리는 당시 상투적인 졸업연설 대신 여성·흑인 민권 문제 등에 진보적인 입장을 피력하면서 전국 언론에 대서특필돼 정치 인생에 첫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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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유리천장을 깬 성공한 정치인으로 통하지만 사실 힐러리의 삶은 미국 사회에 대한 도전 그 자체였다. 1947년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3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힐러리는 부모의 뜻에 따라 명문 여대인 웰즐리대에 입학했다. 하버드대와 예일대 로스쿨 입학 허가를 받았지만, 냉대는 여전했다. 하버드대에서 저명한 법학 교수로부터 "더 이상 여학생이 필요 없다"는 말을 들은 힐러리는 예일대로 진학했다. 이곳에서 남편 빌 클린턴을 만나 1975년 결혼했다. 아칸소주 법무장관, 아칸소 주지사를 거쳐 1992년 대통령에 오른 빌 클린턴과 함께 정치력을 키웠고, 백악관에 들어가서도 이전 퍼스트레이디들의 '그림자 내조'와 달리 정책에 적극 관여했다. 그만큼 주변의 시선도 따가웠다. 하지만 힐러리는 2001년 뉴욕주 상원의원에 당선돼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삶에 뛰어들었다. 2008년 당내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 바람에 막혀 대선 출마가 좌절됐고, 지난해 대선에서는 도널드 트럼프라는 예기치 못한 다크호스를 만났다.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힐러리에 대한 국민의 비호감과 이메일 스캔들 등이 커지면서 선거에 또다시 패배했다. 여전히 인기가 많지만 재임 시절 성추문으로 탄핵 직전까지 갔던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힐러리의 정치적 자산 1호이자 동시에 짐이기도 했다. 

그의 삶은 빛보다는 그림자, 성공보다 실패가 많은 인생이었다. 2017년 웰즐리대 졸업식 연설에서 '세상에서 가장 두꺼운 유리천장을 깨려다 실패한 여자, 힐러리'가 호명되자 그는 연단으로 나가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온 길을 그대로 가야 한다." 너무 많은 여성들이 평생 유리천장을 깨려다 실패하고 살아가지만 이에 굴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계속 가야 한다는 게 그의 모토다. 지금도 힐러리는 뉴욕에서 한 아이의 엄마이자 두 손자손녀의 할머니, 원로 정치인으로서 이민 정책이나 남성우월주의 옹호 등 트럼프 정책에 저항하는 운동을 끊임없이 벌이며 살아가고 있다.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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